someday you will be loved
by 바나나씨앗
아빠와 나

창문으로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밤이다. 12시가 넘어서 휴대폰에 뜨는 아빠, 라는 저장번호를 통해 대리운전사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부터 나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동생은 군대가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며 이틀만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어지간해서는 나를 부르지 않는 엄마가 옷을 챙겨 입으면서 나에게 같이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될줄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저녁에 너무 졸려서 자다가 열한시 즈음에 일어나 이상한 기분에 12시에 맥주 한캔을 마신 뒤였다.

나는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짜증을 냈다. 난 지금까지 아빠가 술에 취했을 때 엄마가 나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가 그 날 있었던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생이 방금 샤워한게 아니라면 동생을 대신 데리고 갔을거라고 말하면서도 엄마는 왜 그리 짜증을 내냐고 신경질이었다. 내가 술먹고 뻗은 적 있나, 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신다. 아, 그렇지,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 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화가 사그러진 것은 아니었다. 집 밖에서 기다리면서도 대리운전사로부터 왜 다시 전화가 오지 않을까, 기다리는 엄마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나는 알 수 없이 올라오는 침을 뱉어가면서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난 말하면서 짜증이 더 났고 떨어지는게 낫겠다 싶어 계단 아래 벤치로 가는 도중 전화가 왔다.

지하주차장 3층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이사한지 2년이 더 지났지만 차를 타본 일이 별로 없어서 지하주차장은 미로다. 대리운전사가 보이고 아빠는 엄마의 말에 한번에 일어났다. 흔들거리면서 엄마에게 매달리면서 잘 걷는다. 나는 다섯발자국 이상 떨어져서 신경질 나는 얼굴을 하고 앞서 걷는다. "머리 잘랐네", "어. 이쁘지"라고 대화가 두번 오고 가지만 나의 대답은 짜증이 묻어나온다. 엄마는 아빠를 부축해달라고 말하지만 난 앞서서 계단을 오를 뿐이다. 엄마만 있어도 되겠네, 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디로 나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지상으로 나오고 2초간 생각하니 어디인지 알겠다. 대리운전사는 이제 갔다. 집으로 갈 수 있는 두갈래 길에서 나는 앞장서서 계단 쪽으로 걸어갔는데 아빠는 갑자기 엄마의 부축을 뿌리치고 언덕 쪽으로 걸어간다. 엄마는 나에게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 날 때문이잖아, 라고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거면 왜 따라 왔느냐고 묻고, 같이 가자면서, 라고 대답한다. 왜냐고 사실 그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이잖아, 라고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엄마는 이 일 얘기 좀 하자고 하면서 언덕 쪽으로 간다. 나는 세 걸음 따라 가다가 계단 쪽으로 돌아선다.

계단을 오르고 바로 집으로 갈까 말까 생각하면서 기다린다.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에서 엄마와 아빠가 보이고 곧 만난다. 아빠는 필요없다고 부축을 다시 뿌리치면서 언성을 높이면서 집으로 향한다. 너라면 어떤 기분이겠냐고 엄마가 묻는다. 왜 그러냐고. 알만한 사람이 물으니까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그대로 말을 해버릴까 말까 고민하지만 이번에도 하지 못 한다.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안으로 같이 들어와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에게 신발 자랑을 한다. 역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배우자라는 것을 아빠는 나 때문에 일찍 알게 된다.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타고 온다. 그 후로는 우리는 말이 없다. 나는 아까부터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물에 담가놓은 잔을 꺼내 씻고 맥주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옷을 갈아입고 모니터가 꺼진 컴퓨터를 다시 잡는다.
 
이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유리한 기억뿐이다. 아마 내가 다섯살일 때, 나는 아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엄마 아빠의 결혼식 촬영비디오를 보면서 아빠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집에 아빠가 없는게 더 익숙하고 편하다. 초등학교 때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는 일찍자고 늦게 일어나서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12시에 잘 때 아빠는 없고 6시 30분에 일어났을 때 아빠는 자고 있었다. 그 후로도 12시에 자든 2시에 다든 4시에 자든 내가 자기 전에 아빠가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 날 술에 취한 아빠를 데리러 나갔을 때 엄마와 아빠는 싸운 상태였다. 내가 몇 살 때인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아주 짧은 말로 나를 내보냈고 아빠는 휘청거렸다. 그 때도 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아빠는 나에게 기대기도 뭐라 말하기도 하는데 나에게 그것 정말 꼴불견이다. 아빠는 이것은 엄마와의 일이라고 말하면서 앞에서 휘청거리고 나는 놀고 있네, 라고 말한다.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 아빠를 데리러 쫓겨난 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술에 취했으면서 어떻게 그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상심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고 가버린다. 가긴 어딜 가냐고 라고 말해보지만 아빠는 아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짓은 하지 않았다, 면서 그대로 가버린다. 정말 놀고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난 짜증날 뿐이다. 새 구두 때문에 아킬레스건에서 피가 날 정도로 아빠를 찾아서 돌아다녔던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인지 엄마 아빠 사이에서 고생하는게 화가 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 것에 이어 나까지 합세하여 그 후로 며칠간 참 볼만한 상황이 되었다. 오늘 아빠가 다시 화가 난 것도 그 날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휘청휘청거리면서도 잘 걷는다. 마음만 있다면 집에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냥 징징거리고 싶은 것이다.

방으로 들어갔다가 아빠는 버릇처럼 거실로 나와서 티비를 틀으며 동생에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지만, 동생은 힘들다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알 수 없는 아빠의 말이 들린다. 캔을 하나 더 가지러 가기 위해 나왔을 때 엄마가 아빠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거실에서 뭘하고 있는지 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방문을 꽉 닫지 않은 상태에서 난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맥주잔은 벌써 비어있다.

화를 내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롭게 보였지만 부자간의 유대감은 희박했다. 나는 집에 있을 때의 아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뭐라고 말하지 않고 참는다. 알 수 없는 균형상태만 지속된 것뿐이다. 나는 싫었던 과거를 잘 기억하고,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그것을 숨기지 못 한다. 내가 술을 마시게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술이 필요해지는 날이 많아지면서 아빠를 이해해간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짜증을 넘어서지는 못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아빠는 날 키운 보람도 없이 서러운 감정일 것이다. 엄마까지 포함해서 2대 1의 냉전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고슴도치를 키우고자 한 계획이 미뤄지는게 더 안타깝다. 

by 바나나씨앗 | 2009/06/24 02:50 | #1 : 나날 | 트랙백 | 덧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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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배준영 at 2009/10/1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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